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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월의 종언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는 분의 열람을 금합니다.
자캐들만 나옵니다.
검의 끝에는 항상
카발란 x 엘시디온
엘시디온과 카발란의 활약으로 총사령부에서 별도의 독립 부대로 인정받은지도 여러 달이 지났다. 국가와 조직을 막론하고 의뢰와 요청이 들어오는 일은 하루이틀이 아니었건만 실베이안은 드물게 카발란의 눈치를 살폈다.
“……하여, 갈레말드의 물자와 구원을 조력할 수 있는 자들은 모여주길 바란다는 전언입니다.”
“…….”
“원치 않는 자들은 거절해도 좋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자에 뒤로 길게 누워 있던 카발란은 얼굴을 책으로 덮고 있었다. 그가 안정을 찾고 싶어할 때 뒤적거리는 원예수첩이었다. 실베이안은 그가 잠들지 않은 걸 알았기에 가만히 답을 기다렸다. 이어서 툭. 수첩을 내던지듯 떨어트린 카발란이 양 팔꿈치를 책상에 올리고 양 깍지를 꼈다.
“나의 고결한 새벽 친구들은 당연히 참가하겠지.”
“그렇겠지요.”
“동료들과 선한 마음이 모여 있는 곳을 그들은 거절하지 않으니까.”
그는 비꼬는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담담하게 그들을 향한 애정을 담고 있어, 실베이안은 적잖게 긴장했다. 그가 당장 화내지 않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그는 화가 날수록 온도가 내려가는 자였으므로.
“하지만 난 갈레말 제국의 이름 아래 죽어간 자들을 아직도 기억해.”
“…….”
“그럼에도 고귀하신 몸께서 감히 너희에게 굽히려는데, 말을 안 듣는다며 목청을 높이던 오만한 발언을 기억해.”
마디가 굵은 손가락에서 뚜둑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로 인해 죽어간 내 동료들과, 상처입었던 사람들을 기억해.”
여전히 실베이안은 입을 열지 못했다. 사늘하게 내려앉은 카발란의 독백만이 얇은 칼날처럼 공기를 한 겹 한 겹 도려내었다.
“물론 그들도 그럴 거야. 다른 그 모든 아픔을 알고 기억해도, 그들 역시 사람이니까 외면할 수 없다는 거겠지. 하지만 실베, ”
잠깐의 정적. 실베이안은 무심코 들고 있던 서류를 꾹 말아쥐었다.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존재들을 사람으로 대우하고 싶지 않다.”
“…….”
“갈레말 제국군을 쓸어버리고 민간인만 구조하는 조건이라면 모르겠지만, 분명 그런 일은 없겠지. 그러니 헛된 대화도 시도하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실베이안의 답은 빨랐다. 카발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낼 줄 알았는데.”
“아뇨. 오히려 안심했습니다. 당신이라면 그런 놈들을 살려둘 필요가 있냐며 칼부림을 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넌 가끔 내가 상관이라는 걸 잊는 것 같아. ”
“중요합니까? ”
어깨를 으쓱인 실베이안이 문서를 정리했다.
“그러고보니 조트 탑을 제외한 다른 곳에도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다 들었습니다. 그들을 살펴보러 가시는 것도 좋겠군요. 당신이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사기가 올라갈 테니까요. 대신…”
“대신?”
“갈레말드에 당신의 대리인으로 파견 가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
카발란은 그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나나 우리 소대의 이미지 때문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내 권한이 필요한 거라면 그렇게 하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스테파니비앙이 이번 파견에 합류한다는 정보가 있더군요. 그도 만나볼 겸 참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머저리 같은 놈들이 있으면 겸사겸사 총도 갈겨주고요.”
두 가지 색의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카발란은 드물게 소리내어 웃었다. 확실히, 실베이안이라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정당화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발란의 대리인으로서, 그들의 동료를 지키기 위해 행동한 거라면 누구도 무어라 말하지 못할 테지. 카발란은 드물게 즐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서신을 남겨주지. 총사령관에게 이걸 전해주도록.”
“알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링크펄로 연락하고.”
“그건 상황 봐서 하도록 하죠.”
“너는 꼭 잘 나가다 한 번은 날 찌르고 가더라.”
한탄하듯 중얼거리는 카발란이었으나 화난 기색은 가라앉아 있었다. 실베이안이 건네준 지도에서 탑의 위치와 동맹군의 배치를 확인하던 카발란이 지나가듯 물었다.
“시오레도 데려가. 치유술을 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게 낫겠지.”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하다못해 다란이라도. ”
“다란이에겐 리샤 옆에 있어달라고 했어. 비온이는, 엘을 따라가든 따라가지 않든 스스로 할 일을 아는 아이야. 따로 서신은 보내지 않아도 돼. 아, 포레 누님에겐 따로 연락해줘. 어떤 결정이든 존중하겠노라고. ”
카발란은 말을 끝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묵직한 금속음을 내며 걸어가던 그가 문득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흑와단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과거를 잊고 나아간다는 건 어불성설이야. 모두의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설령 생명이 먼저라 해도… 아니. 오히려 생명이 먼저기에 절대로 좌시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난 절대로 잊지 않아.”
담담하면서도 싸늘한 목소리가 다시금 공기를 갈랐다. 그를 존경하고 따르면서도, 이럴 때면 실베이안은 매번 안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반드시 전하도록 해, 실베. 만일 그들이 내 동료들의 선의조차 짓밟고 모욕한다면,”
그가 아직, 인간을 적으로 돌리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갈레말드에 닥칠 다음 재앙은 내가 될 것이라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