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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엘)말의 약속
Caption 파이널판타지14 기반 자컾입니다. 카발란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말의 약속 : 언약 카발란 x 엘시디온 아직도 기억 나. 뺨을 매섭게 스치던 따가운 모랫 바람과 귀를 찌르는 함성 소리, 고함 소리. 종종 코가 매워지던 짙은 땀냄새와 흙내음들. 어느 것 하나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라 눈이 팽팽 돌 지경이었어. 누구도 친절하지 않았고, 뭔가를 해오라며 호통치거나 능청스레 부려먹고…. 그래도 그 풍경, 다시 생각해보면 싫지 않아. 북적이는 인파를 하나하나 헤듯이 살피면 다가오거든. 나를 부르던 엘의 목소리가.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어. 미코테…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거든. 쫑긋대는 귀가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만질 뻔했었는데. 혹시 그때 내 시선이 기분 나빴다면 용서해줘…. 사람을 호기심 때문에 뚫어져라 보는 건 실례지. 알고 있었지만, 눈을 쉽게 뗄 수가 없었어. 내게 특별한 감정도 음심도 품지 않은 이가 선뜻 내밀어준 선의를, 어떻게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었겠어? 엘이 미코테가 아니었어도, 다른 누군가였어도, 설령 야만족이었어도 나는 엘을 줄곧 바라보게 되었을 거야. …그때 반한 거냐고 물으면, 글쎄. 부정은 하지 않을게. 엘이 그 뒤로도 이것저것 많이 도와줬던 것도 전부 기억하고 있어. 옷에, 귀걸이에, 안경에…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 걸까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나도 엘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 엘처럼 되고 싶다, 엘이 해줬던 만큼 돌려주고 싶다… 엘에게 받은 건 단순한 장비들이 아니었던 거야. 나를 누군가가 지켜봐주고 있단 마음을, 따뜻한 응원을, 지지를 받았던 거야. 그것들이 쌓여 엘과 같은 모험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싹터서, 뿌리를 깊게 내려 꽃을 피웠어. 내가 지쳐서 쓰러졌을 때, 마음이 짓눌려 괴로워할 때 버틸 수 있게 해줬어…… 엘이 날 이끌어준 거야. 몇 번이고 말해도 모자랄 만큼, 전쟁신 할로네에게 맹세컨대 나를 이끌어준 길은 엘이었어. 엘을 따라 걸어온 길에서 마침내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앞으로 걸어갈 먼 곳을 엘의 시야에서 보게 되었어. 사실은 조금, 아니, 많이 걱정돼. 엘과 함께 서는 꿈을, 내 방패로 엘을 지키는 꿈을 늘 꾸고 있었어. 하지만 엘은 언제나 강했으니까. 늘 내 앞에서 이끌어주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평생 내가 엘을 지켜줄 차례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게 슬펐어. 이기적이지? 엘이 누구보다 강해져서 절대로 다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엘이 너무 멀리 앞서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이기심을 품고 뒤를 좇았어. 이 마음이 들킬까 걱정했던 거야. 지금껏 나를 돌봐주고 응원해준 엘의 선함을 배신하는 일이 될까봐. 그런 내게 실망하여 엘이 등을 돌리게 될까봐. ……사실, 지금도. 고민은 변하지 않았어. 하지만 들어줬으면 해. 나는, 아직도 내 불안을 덜어내는 법을 몰라. 하지만 이제야, 엘의 옆에 오롯이 서게 되었어. 나도 엘을 지킬 수 있다고, 엘이 나보다 먼저 앞서가더라도 따라갈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되었어. 이것이 초라한 내가 내미는 마지막 용기야. 엘이 키워줬으니까. 엘의 등을 보고 지금껏 자라왔으니까, 몇 번이고 따라가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고. 그런 일이 얼마든지 반복되더라도, 엘의 옆에 설 한 순간을 위해서 수 백의 고난을 넘겠노라고. 전쟁신 할로네와 내 이름에 걸고 맹세할게. 그러니, 할로네의 고귀한 창이여. 그리다니아가 틔운 용맹한 꽃 엘시디온. 내가 엘을 위한 방패를 세울 수 있도록, 엘을 지키는 검으로서 싸울 수 있도록, 그 옆을 내게 비워주지 않을래? 사랑해, 엘시디온. 나의 엘.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고. 나는 언제나 엘이 닿는 곳에 머물러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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