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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극 이후의 시점입니다. 신극의 주요 네타를 담고 있으므로 신극을 보지 않으신 분께 권장하지 않습니다.
길지 않은 단문입니다.
카이바 사장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어쩐지 존대로 써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카이바 너의 생일이던데."
두루마리의 끈을 당기던 카이바가 고개를 들었다. 시종일관 깃펜을 놓지 못하던 아템의 손에 오랜만에 석판이 들려 있었다. 푸르게 빛나는 눈이 석판에 얹힌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숫자도 그가 익히 아는 글자도 아닌 그림이 빼곡했으나, 이집트의 상형 문자에 진작 익숙해졌던 카이바에겐 못 읽을 것도 아니었다. 무심히 고개를 돌린 카이바가 마저 끈을 풀어내렸다.
"그렇군."
"그게 끝이야?"
"육체의 한계에서 벗어난 나에게 그런 날짜는 이제 의미가 없다."
눈을 동그랗게 떴던 아템이 곧 한숨과 함께 얕게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그래도 일 년에 하루 뿐인데 조금은 기뻐해도 되지 않아?"
"글쎄. 별 감흥 없다만."
"딱딱하긴."
그래도 이런 부분이 카이바답긴 했다. 이미 옛날이 된 것들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신경을 쓴다.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시점은 의외로 상대적이다. 그걸 한치의 혼란도 없이 카이바는 명백히 정리하여 결론짓고 있었다. 그의 시점에서 매년 찾아올 생일은 과거의 흔적이다. 사람으로서 기뻐했던 것, 의미를 부여했던 것도 이미 마음에서 덜어내었을지 몰랐다. 대신 그 빈자리를 다른 것들로 채우겠지. 지나간 추억에 불과했던 그를 현재로 삼아 미래의 지금에 도달한 것처럼. 남들에게는 이해받기 어려울 사고일지라도 그런 카이바의 방식을 아템은 좋아했다. 그 고집과 가치관이 그에게도 연인과 함께하는 미래를 안겨주었으니까.
하지만 아템도 아템이었다. 그의 뜻을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역시 양보하기 싫은 부분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석판을 내려놓은 아템이 그를 불렀다.
"카이바."
"뭐냐, 또."
"나 좀 봐봐."
카이바가 심드렁하게 눈을 돌렸다. 아템은 앉은 각도를 틀어 그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오해의 여지 없는 명백한 표현에 카이바가 눈썹을 조금 움직였다.
"어리광인가?"
"내가 아니라 네가 부려도 된다는 뜻이었지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네."
"그럴 생각은 없다고 얘기했을 텐데."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아템에게선 물러설 기미가 없어 보였다. 한숨을 내쉰 카이바가 결국 두루마리를 내려놓고 그에게 다가갔다. 가까워지는 거리에 맞춰 일어난 아템이 그를 양팔로 꼭 끌어안았다. 가슴에나 겨우 올 듯한 작은 키였지만 온기를 전하기엔 충분했다. 어린애 같은 짓을. 핀잔 주듯 말하면서도 피식 웃은 카이바가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너보다 작다고 어린애 취급은 그만두지 않겠어? 아템이 반문하며 고개를 들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눈은 햇살을 잘라담은 양 부드럽고 따스했다.
"네게 의미가 없어졌다 해도 내겐 아직 있어. 네 탄생의 날."
푸른 청안에 언뜻 잔바람이 일었다 가라앉았다. 아템이 그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네가 태어났기 때문에 너와 만날 수 있었고, 바쁘게 이어질 영생에도 행복과 여유가 생겼어. 이 날 네가 세상에 나와주지 않았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야."
"……."
"태어나줘서 고맙다, 카이바."
카이바는 물끄러미 그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체구임에도 그가 자신보다 크게 느껴지는 건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금만큼은, 어째서일까. 그에게 완전히 감싸인 듯한 포근함은. 느리게 웃음 지은 카이바가 팔을 들어 아템을 마주안았다. 답지 않은 감상이 혼잣말처럼 흘러나왔다.
"설마 선물로 신의 축하를 받을 줄이야. 확실히 태어난 게 헛수고는 아니었군."
가득 안은 그의 머리에 코를 묻으며 카이바는 눈을 감았다. 여전히 그에겐 숫자에 불과할 날짜일지라도 지금만은 달랐다. 가장 큰 삶의 의미가 부여해준 시간이 그를 닮아 반짝이고 있었다. 품 안에서 들려오는 작은 웃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카이바는 꽤 오래도록 그를 안고 서 있었다. 아템이 먼저 고개를 들어 두 번째 선물을 입술에 안겨줄 때까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