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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시온 x 알바피카
"알바피카!!"
등뒤에서 들린 예상 못한 외침에, 알바피카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머리끈을 놓칠 뻔했다. 그가 이렇듯 불쑥 들이닥치는 건 하루이틀이 아니었지만, 이렇듯 아침부터 알바피카를 찾는 일은 확실히 예삿일은 아니긴 했다. 알바피카가 휙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가쁜 숨을 고르던 시온이 곧 그의 앞으로 걸어왔다. 아랫층부터 신나서 뛰어온 건지, 들뜬 기색이 가득한 이마와 뺨에 땀이 이슬처럼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오늘도 날이 더워서 말이다!"
"…그러면 좀 천천히 걸어오지 그랬나. 땀투성이가 되서는."
진위를 가늠할 수 없는 말에, 한숨을 작게 내쉰 알바피카가 핀잔을 주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늘 들고 다니는 손수건이 이럴 때 유용하게 쓰여서 다행이었다. 줄줄 흐르는 땀을 세심하게 닦아내는 손길에, 멀뚱히 서 있던 시온이 이내 뺨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지만, 그래도 마음처럼 쉽게 손을 멈출 수는 없었다. 짐짓 태연한 얼굴을 가장하고서, 땀을 마저 닦아준 알바피카가 부러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래서. 이 더운 날씨에 여기까지 달려온 이유는?"
"아, 그게…!"
"시시한 얘기할 거면 난 들어가겠다."
"아니, 잠깐만! 지금 할 거다, 알바피카!"
시온이 알바피카를 잡으며 급히 뭔가를 꺼내들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골라하던 알바피카가, 고개를 돌리려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제 시온의 머리를 묶어주었던 머리끈이 커다란 손에 아담하게도 잡혀 있었다.
"머리, 한 번 더 묶어주지 않겠나!?"
시온의 외침이 우렁차게 둘 사이에 울려퍼졌다. 비장한 어투와는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부탁이었다. 알바피카가 어이없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뭐?"
"그, 그게! 내가 묶으려니까 도저히 안 되겠어서 말이다! 자꾸 풀리기만 하고, 덥기도 하고… 한 번만 더 묶어줬으면 좋겠는데, 싫은가?"
시온이 급히 목소리를 낮추며 알바피카의 눈치를 살폈다. 기세 좋게 들이닥친 보람도 없이, 금세 얌전해진 모양새가 주인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았다. 말갛게 빛나며 저를 빤히 들여다보는 홍차색의 눈동자를, 잠시 마주보던 알바피카가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계속 그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제 독피고 뭐고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귀여움에 그의 머리라도 마구 헝클어버릴 것만 같았다. 톡, 가벼운 손짓으로 그의 손에 걸린 머리끈을 빼어든 알바피카가 애써 무심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근처의 의자를 눈짓했다. 시온의 낯빛이 삽시간에 환해졌다.
"다음엔 그렇게 급하게 안 와도 해줄 거니까. 뛰어오지만 마라. 다른 궁 사람들에게 민폐잖아."
"그래! 고맙다, 알바피카!"
"…그렇게 감사받을 일도 아니니까. 앉기나 해."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 내 쪽이니까. 마지막을 말을 삼키며, 알바피카는 냉큼 자리에 앉는 시온의 뒤에 가서 섰다. 창가로 스며드는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 금발 위에서 눈부시게 흐르고 있었다. 너는 모르겠지. 평생을 가도 모를 테지. 이 부드럽고 풍성한 머리칼을, 이 두 손 가득 쥐어볼 수 있는 기회가 내겐 축복으로 와닿는 것을. 누구도 가까이 할 수 없고, 가까이해서도 안 되는 숙명을 짊어진 손에 기꺼이 너를 맡겨주는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를. 가슴 한켠에서 조용히 밀려드는 감정을 살며시 억누르며, 알바피카는 그의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그러쥐었다. 누구에게서 먼저 시작되었는지 모를 미소가 서로에게 햇살처럼 번져 있었다. 곧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알바피카의 손이 춤을 추듯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누가 더랄 것도 없이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