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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조각내어 넣은 공간. 짙고 맑은 파랑이 물결 하나도 없이 선명하고, 새하얀 모래가 깔린 바닥엔 색색의 산호들이 제 손가락을 곧게 내밀어 뻗고 있었다. 그 사이로 빠져나오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나비 날개보다 얇은 지느러미를 섬세하게 흔들었다. 노란색, 붉은색, 혹은 간혹 눈부실 정도로 빛을 발하며 긴 잔상을 남기는 은색. 그 색에 감탄하며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둥근 꼬리를 말고서 길쭉한 몸을 자랑하고 있는 해마가 시야에 들어왔다. 등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지느러미가 앙증맞고 귀여워, 절로 나오는 탄성이 두툼한 유리 위에 새하얀 입김을 남겼다. 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보는 풍경에 반짝이는 눈이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마음에 드나?"
아템의 뒤로 다가온 하얀 인영이 신기루처럼 어른거렸다. 유리에 코를 박을 듯 가까이 서 있던 아템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제 앞을 가로질러 가는 손톱 만한 물고기에 붙박인 채였다.
"정말 예쁘다... 식용으로 잡아 바치던 물고기하고는 차원이 달라. 풍경도 아름답고..."
"흥. 당연하지. 예쁘지 않으면 관상용으로 비싸게 들여온 의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너무 작고 예뻐서 잡지도 못하겠어... 아 저거 봐라, 카이바! 저기로 빠져나갔어! 저렇게 좁은데 어떻게 헤엄친 거지? 신기해...!"
카이바의 눈썹이 삐뚜름하게 기울어졌다. 그러나 그의 앞에 서 있을 뿐더러, 물고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 아템이 그걸 눈치챌 리 없었다. 머뭇머뭇, 닿으면 깨질까 염려하는 양, 조심스럽게 내민 손을 겨우 갖다댄 아템이 고개를 더 가까이 했다. 수조만이 가득 찬 시야에 물고기들이 무수한 반짝임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숨을 참는 것처럼 꼭 다물려 있던 아템의 입술이 다시금 조용한 탄성을 흘리며 벌어졌다. 잠시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이바가 발을 움직여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템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도 않고 구경에 한창이었다.
"그렇게 좋나?"
"응. 정말 좋다. 이집트에 살 때는 한 번도 못 봤으니까... 오아시스에 잠수 같은 것도 해본 적 없고. 바다 속에서는 물고기가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이렇게 만들어놓는 곳이 수족관이라고 했나? 그곳에도 이렇게 물고기가 잔뜩 헤엄치고 있는 거야?"
"흥. 여기에 있는 것들은 거기서도 못 보는 귀한 놈들 뿐이다. 아무 녀석들이나 잡아다 넣으면 카이바 코퍼레이션의 재력이 울지."
"그럼 거기엔 여기서 못 보는 거랑 다른 물고기들도 있단 말이지?"
차분해지는가 싶던 카이바의 눈매가 다시 찡그려졌다. 도통 돌아볼 줄 모르는 그의 붉고 풍성한 머리칼이 괜히 얄밉다는 표정이었다. 걸음을 조금 옮겨, 그의 뒤에 다가가 선 카이바가 아템의 위에 손을 짚었다. 감싸듯 드리워진 온기에 아템의 고개가 그제야 조금 움직였다. 카이바? 아래에서 기포처럼 올라오는 부름이 귀를 적신 찰나였다.
"넌 정말 눈치가 없어."
"무슨ㅡ"
다가온 다른 손이 아템의 턱을 감싸서 들어올렸다. 힘이 세게 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손짓에 아템은 절로 고개를 뒤로 젖힐 수밖에 없었다. 내내 푸른빛이었던 눈앞을 메운 카이바의 얼굴엔, 뒤집힌 시야로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부루퉁하니 토라진 기색이 가득했다. 아템이 동그래진 눈을 깜빡거렸다. 카이바가 수조를 짚은 손을 내려서 그의 이마를 약하게 때렸다.
"기껏 신경 써서 화려하게 꾸며놨는데 다른 수족관 얘기나 하고 말이야."
"아야."
"물고기 고르느라, 방 만드는 것 지휘하느라 정신없었을 나는 안중에도 없고."
불만을 토로하려던 입술이 도로 닫혔다. 퉁명스러운 목소리, 제 얼굴을 쥐고 놓아주지 않는 손길.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그제야 깨달아, 아템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느냐는 면박과 함께 재차 이마를 노린 손가락이 날아들었지만, 한 번 터진 웃음이 그리 쉽게 그칠 리 없었다. 아예 몸의 힘을 빼고 그의 가슴에 완전히 등을 기댄 아템이 손을 올려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머리까지 닿지 않는 작은 손에서 줄곧 바랐던 온기가 비로소 전해져왔다.
"잘했다는 칭찬이 그렇게 듣고 싶었나, 카이바? 그래, 그래. 잘했어. 정말 멋지다."
"...흥. 엎드려 절받기도 아니고. 됐다. 내가 어린애인 줄 아나."
"아까까지 안 해줘서 섭섭하단 얼굴 하고 있었으면서?"
아템이 상체를 조금 일으켜 그의 볼에 키스했다. 짧게 닿았다 떨어지는 감촉이 아쉽다는 양, 쫓듯이 다가오는 입술이 빨랐다. 그의 입술에 쪽, 쪽 소리까지 내며 수 번을 입맞춘 아템이 팔을 들어서 그의 목을 완전히 감싸 안았다. 숨이 곧장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자리한 아템은 여즉 웃고 있었다.
"정말 멋지다. 마음에 쏙 들어. 그래서 넋 놓고 보고 있었던 거고."
"...고작 그 정도?"
"물론 더 있지. 정말 고맙다, 카이바. 네 덕분에 영영 못 볼 뻔했던 광경을 직접 볼 수 있었어."
"......흥."
그제야 아템의 턱을 놓고 그를 꼭 끌어안은 팔이 부드러웠다. 작게 웃으며 아템이 그의 품에 좀 더 편히 기대왔다. 연인이 저만을 위해서 만들어준 세상도, 저만을 위해서 내어주는 온기도 지금 전부 그의 곁에 있었다. 이 이상 더 무엇을 바라고 원할까. 시선을 끌어당기는 푸른 공간 대신, 질투심 많은 연인의 얼굴을 좀 더 가까이하며 아템이 미소했다. 말 몇 마디에 녹 듯이 풀려버린 눈매가, 그 안에 비치는 제가 물고기보다도 더 좋다고 내심 생각하면서.
"그래서,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은?"
"물론 따로 있지. 내가 너를 모를까."
아까는 몰랐으면서. 어린애 같은 투정을 받아넘기며, 아템이 둥글게 휘어진 입술을 그에게 겹쳤다. 네모진 푸른 공간, 그 위에 비친 둘의 숨결이 소리도 없이 얽히며 녹아갔다. 낯선 파랑이 둘만의 바다로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