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로 돌아가기
디오지크)녹는 한 숨
Caption 멸자님과 탐라에서 풀었던 북부대공 지크와 마족 디오썰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평생의 겨울」, 「녹기 전에, 녹이기 전에」 와 시간은 이어지지 않으나 같은 설정을 공유합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된 썰을 보러 가기 눈이 내리는 풍경은 디오에겐 익숙한 것이었다. 인간이 겨울이라 부르는 고요와 적막, 얼어붙은 푸른 결정과 하얗고 섬세하게 피어나는 눈꽃은 그의 일부이자 그를 둘러싼 세계이기도 했다. 한껏 생기를 뽐내고 명을 다한 것들에게 안식을. 다음을 기약하는 자에게 축복의 휴식을. 디오의 손길 닿는 곳마다 얼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죽지 아니한 것 또한 없었다. 그것을 슬프고 안타깝다고, 가엾다고, 혹은 저주받았노라고 여기는 것은 인간만이 갖는 오만이었다. 디오는 단 한 번도 제가 부여받은 겨울을 멀리한 적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했다. "......" 디오는 맞은편에 앉아 잠든 인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때 얼어붙어 죽는 게 아닌가 했었건만, 쉽게 죽지 않는다고 장담한대로 그는 아직도 끈질기게 살아 있었다. 추위에도 꺾이지 않고, 마수나 마족과의 싸움에서도 악착같이 견디며 삶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사뭇 경이롭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면 디오와 처음 만났던 때도 그러했던가. 얼어붙은 호수 같은 눈을 하고서도 검을 쥔 손은 세찬 물처럼 매끄럽게 움직이고, 디오를 노리는 창은 눈바람보다도 더 매서웠더랬다. 디오는 이미 그 때부터 제가 지크하트를 얼리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는, 그의 생은 이대로 얼려버리기엔 너무나도 아름답고도 힘찬 것이었다. '...그래, 그건 정말... 아름다웠지.' 유독 손톱이 길고 커다란 손이 지크하트에게 닿을 듯하다 멈추었다. 평온하게 눈을 내리감은 지크하트는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틈새로 들어온 숨이 길게 흘러나오며 하얗게 부서져 녹아내렸다. 디오의 손가락이 그 틈 언저리에서 멈추었다. 인간의 숨은 마족의 것보다 훨씬 뜨겁고 높았다. 백 년 남짓도 못 사는 생명은 이렇듯 저를 태워 그리도 찬란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디오는 손이 녹아버릴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만히 닿는 숨결을 느끼고 있었다. 하얀 입김에 젖은 입술에 새하얀 눈이 맺힐 듯 말 듯하다가 기어이 환상처럼 스러졌다. "음..." 디오가 손을 뺄 새도 없이 지크하트가 눈을 느리게 떴다. 언 호수에 햇빛이 미끄러지듯, 천천히 초점이 돌아오는 은안이 디오를 담아 가뒀다. 디오가 급히 손을 거두었다. 딱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변명이 먼저 튀어나왔다. "깊이 자더군." "그랬나... ...음...? 눈인가." 지크하트는 디오와 자신의 거리는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무를 대충 세워 만든 임시 거처의 밖으로 그가 머리를 내밀자, 검푸른 흑발에 금세 눈송이가 하나 둘 앉으며 맑은 물방울로 맺혔다. 디오는 문득 궁금해졌다. 언젠가 그의 열기에 제가 녹는 날이 올까. 혹은, 제가 그의 생을 꺼트리는 날이 올까. 만약 그 어떤 것도 오지 않는다고 하면. 숨결이 완전히 녹기 전에, 이 손으로 매만져볼 수 있을까. 열을 알아버린 겨울은 이제 잠들지 않은 꽃을 보기를 원하고, 얼음을 깨부수며 약동하는 생명을 갈망한다. 낮게 하품하며 일어난 지크하트가 검과 창을 집어들었다. 디오는 그의 숨결이 닿았던 손가락이 뜨겁다고 생각했다. 녹아버렸나보다. 줄곧 그를 담고 있었던 마음 한 구석도. "가볼까. 디오." "......아아. 그러지." 겨울이 다시금 출렁인다. 그를 녹일 봄이 곁에 훌쩍 다가와 있었다.